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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16

국립진주박물관 - 16. 1900년대 초기 진주성의 모습. 휴게실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휴식을 취한다음 다른 전시관으로 이동하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쪽 경상남도 위성사진이 붙어 있는곳이 1층 전시관 출입구 이다. 이곳을 나와서 저기 앞쪽의 기념품 파는곳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두암 김용두 선생님께서 기증하여 전시하는 두암관이 있다. 두암관으로 가는 복도에는 1900년도 초기의 진주성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진주성 안의 민가 晋州城內 民家 1915년 촉석루와 의기사 矗石樓 , 義妓祠 1910년 남강에서 바라 본 촉석루 1927년 촉석루와 빨래하는 아낙들 1927년 남강 배다리 舟橋 1915년 죽전동 고분군에서 바라 본 진주성 1917년 예전의 진주성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구경하였으니 이제 두암관으로 발길을 옮겨서 다음 포스트 쓸 준비를 해야.. 2014. 2. 17.
국립진주박물관 - 13. 남명조식의 실천사상 남명조식의 실천사상 도덕성을 강조하고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성리학은 조선의 국가 이념이었다. 이러한 성리학은 16세기 들어 경남 서부지역의 남명 조식曺植에 의해 크게 발전 하였다. 그는 지리산 아래 산청에 터를 잡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 양 성에 힘썼는데, 특히 학문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궁리보다는 실천을 강조하였으며 성리학적 사회질서 및 윤리도덕 의 구현에 앞장섰다. 당시 성리학의 대학자 이황에게 보낸 편지 중 “손으로 물 뿌리고 청소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 으로만 하늘의 이치를 논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는 글귀는 그의 사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학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경의사상敬義思想’으로 요약된다. 경敬은 내적 수양을 통해 마음을 밝고 올바르게 하여 근본을 세우는 것이고, 의義는 경敬.. 2014. 2. 1.
국립진주박물관 - 8, 명군 참전의 공과. 명군 참전의 공과 임진왜란 이전부터 일본의 대대적인 침입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였기 때문에 명나라는 조선이 단기간 내 일본군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자, 일본과의 동맹을 의심하여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관리를 파견 하기도 했다. 명 조정은 조선의 파병요청에 대해 논란 끝에 중국영토 밖에서 외적을 물리친다는 원칙 아래 원군을 파병하였다. 조선은 명군의 지원으로 몇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평양과 서울 등을 탈환하고 대부분의 국토를 단기간 내 수복할 수 있었다. 둘째, 조선의 배후에는 명나라가 후원하고 있다는 점을 일본에게 명확히 인식시켰다. 셋째, 전쟁기간 중의 파농과 기근으로 부족해진 식량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명군의 지원은 반대로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다. 첫째, 명군의 지휘권 행사로 조선군은 .. 2013. 12. 2.
호국사. 지난 10월 진주의 축제기간에 호국사를 참배한적이 있어서 포스트를 올려본다. 진주성 서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곳이 호국사다. 호국사 절 입구 왼편에 서있는 호국사 안내 표지판이다. 절입구 현판에는 月影山護國寺(월영산호국사) 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호국사 절입구를 들어서면 사천왕이 양쪽에 서있는데 왼쪽에는 동방의 지국천왕이 비파를 들고있고 그 옆에는 남방의 중장천왕이 용을 손에 들고 서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북방에 다문천왕이 검을 들고 서있고, 그옆에는 서방에 광목천왕이 탑을 들고 서있다. 호국사 절입구 문을 들어서면 절마당 왼편에는 眞府殿(진부전)이 위치해있다. 진부전 아래에는 천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밖에서만 살짝 엿보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절마당 오른쪽에는 사무실이 자리를 잡고있다. 진부전 안쪽.. 2012. 12. 9.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의식. 지난달 10월 7일 토요일 축제기간에 진주성을 촬영하다가 공북문에 이르렀을때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의식’이 진행 되고 있는것을 보고 카메라에 담았다. 진주시가 관광활성화 방안으로 지난 3월 10일부터 매주 토요일 연중 상설화로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의식 행사’를 상설 개최한다. 진주성 관리과는 올해는 임진왜란 진주대첩 42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3월 10일 첫 회를 시작으로 매 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1회 약 2시간가량 실시되고있다.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의식’행사는 경남도의 군사, 행정 중심지로서 애국충절의 귀감이자 논개의 고귀한 혼이 숨 쉬고 있는 유서 깊은 진주성을 배경으로 진주목의 목사이자 경상우병영의 병마절도사이신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진주성전투 를 스토리텔링화하여 진주성 수성.. 2012. 11. 9.
진주성 탐방기 [晋州城 探訪記].2 담배 한개피를 태우며 연기를 공중으로 다 뿜어냈으니 이제 또 공북문을 통하여 진주성을 탐방 해야지... 동쪽에서 바라본 공북문이다. 올해인지 작년인지 잘 모르겠다만, 공북문을 보수공사를 했다. 그런데 보수공사를 하면서 똑같은 돌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벽이 보수공사를 했다는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사진 오른쪽 중앙에 나무 뒤에 보이는 건물이 북장대다. 공북문(拱北門) 공북문은 17세기 이후에 그려진 진주성도에 나와있는 진주성의 정문으로, 공(拱)은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올려 공경한다는 뜻이며, 북(北)은 임금이 계시는 북쪽인 북두를 뜻하는 것으로, 2002년 5월 1일 홍예식 2층 다락루로 복원 하였다. 공북문을 통과하면 이정표가 있는데 여기서 50m 더 가면 오른쪽에 영남포정사가 있다. 사진.. 2012. 10. 18.
진주성 탐방기 [晋州城 探訪記].1 10월 2일 지금 진주는 축제중이다. 파란블로그 이사한다고 포스트가 많이 밀려서 포스트 올리려고 사진작업중에 있는 데 딸아이가 구경 가잔다. “오늘 가장행렬도 안하는데... ” 하니 그래도 나가보잔다. 그래서 카메라 가방을 울러메고 집 을 나섰다. 집이 신안동이다 보니 진주성 서편에 있는 서장대 부터 구경을 하기로 했다. 10월 7일 일요일, 월요일부터 주간 들어가기 때문에 하루 쉰다. 야간일을 하고 집에와서 대충씻고 카메라 가방을 울러 메고 집을 나섰다. 10월 2일 못담은 사진을 담기 위해서 였다. 진주성은 외적을 막기 위하여 삼국시대부터 조성한 성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유서깊은 곳이다.고려 말 우왕 5 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던 .. 2012.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