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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옥천사(玉泉寺).

by 五江山 2011. 10. 10.

 

 

         환쟁이님 덕택으로 고성 연화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옥천사까지 오게 되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고성 연화산 옥천사를 차근 차근 둘러보기로 했다.

 

           연화산 옥천사 라고 새겨진 일주문이 보인다. 이 일주문을 지나야 옥천사로 갈 수가 있다. 다만 이 길이 아니라도

         길 반대편에서도 옥천사로 갈 수 있는 길은 있다.

 

 

 

 

    

 

          일주문을 지나서 산길을 걷다보면 천왕문이 나온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사천왕은 부처님께 불법을 수호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분들로 사찰에 침범하는 일체의 잡귀나 삿된 자들을 막아주는

        하늘의 천왕들이다.

 

 

 

 

 

 

              이들 사천왕은 동방에 지국천왕이 비파를 들고 있어며, 서방에 광목천왕이 탑을, 남방에 중장천왕이 용을, 북방에

           다문천왕이 검을 각각 들고 있다.

 

 

 

 

 

 

              이들은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일곱 겹의 산맥과 해와 달을 관장한다고 한다. 이 천왕문은 1991년에 건립 도;었다. 

 

 

 

 

 

 

          천왕문을 지나면 왼편에 비각이 있다.

 

 

 

 

 

 

              붉은 벽돌담의 비각 안에는 이 절에 사주를 많이 한 “증 호조참판 안공 선경비”(贈 戶曹參判安公善敬碑,1922)가 있다.

           붉은 벽돌담 밑 오른쪽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아무리 고관이라도 이 곳에서부터 말에서 내려 걸어오라는 표시

           이다. 이는 옥천사에 임금의 수복을 비는 축성전(祝聖殿)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각을 지나면 계곡이 있고 계곡옆에는 범종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은 계곡에 물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는 않지만 한여름에는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 소리를 내며 굽이쳐서

          흘렀을것으로 생각된다.

 

 

 

 

 

 

           계곡을 지나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현판에 옥천사(玉泉寺) 라고 새겨진 자방루가

         보인다.

 

 

 

 

 

 

           그리고 왼편으로는 범종각이 있다.

         범종각(梵鐘閣)에는 불전사물(佛前四物)인 범종(梵鐘), 법고(法鼓 북), 목어(木魚), 운판(雲版, 보장각에 보관 중)이 있다.

 

 

 

 

 

 

 

           범종은 지옥중생들이 종소리를 듣고 고통을 벗어나도록 새벽에 28회, 저녁에 33회를 치고 있다.

 

 

 

 

 

 

           법고는 짐승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치는 것으로 번뇌와 망상, 집착과 오욕을 떨쳐버리라는 뜻이 있다.

 

 

 

 

 

 

              목어는 수중생물을 제도하고 수행자들이 물고기처름 항상 눈을 뜨고 정진하라는 뜻으로 치는 것이다.

           운판은 날짐승들을 제도하기 위해 치는 것이다.

 

         1776(영조52년)에 주조된 대종이 있어나 보장각에 보관 중이고 현재 걸려 있는 이 대종은 1987년 재일교포 박명호씨

         거금을 희사하여 주성한 것이다. 박 거사는 어릴 때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이 절을 잊지 못 해 거금을 희사 하였다.

         범종 뒤편에는 조선시대에 싸리나무로 만든 큰 구시가 있는데 이는 큰 불사가 있을 때 밥을 푸거나 물을 담던 대형나무

        그릇이다. 범종각과 주련 4폭은 근대승려로서 가장 글씨를 잘 썼던 석주스님의 글씨이다.

 

 

 

 

 

 

 

         범종각 옆의 작은 개울가에는 물봉선과 기름나물이 옥천사를 찾는 불자님들과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옥천사 앞마당... 왼쪽에 있는 건물이 자방루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템플 스테이 수행관 무우당(無憂堂)이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현판에 연화산 옥천사 라고 쓰여 있다. 문 왼쪽은 요사채 인데 시간관계상 못들어가봤다.

 

 

 

 

 

 

           자방루(滋芳樓)

         경남유형문화재 제53호 자방루(滋芳樓)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건물이다. 영조 40년(1764년) 뇌원(雷遠)대사가

         창건하고 고종25년(1888년) 농성화상이 중건한 이 건물은 간결한 구조이면서도 튼튼하게 건립되어 우천시 승군 340명

         이 앉아도 끄떡없게 지어졌다. 특히 조선 후기 단청장 스님들이 1888년 단청을 하면서 대들보 6개중 왼쪽에서 4번째에

         는 선녀가 피리를 불며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비천상이 쌍방으로 그려져있고 3번째에는 용이 꿈틀거리며 날아 오르는

         비룡(飛龍)상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듯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4개의 기둥중 2번, 3번의 기둥머리에는 용두(龍頭)가 쌍방

         으로 조각되어 있다. 지붕 밑의 장혀와 창방 안팍에는 화조도(花鳥圖)와 풍경화를 번갈아 그렸는데 이는 120년 전 중수

         당시에 그린 단청그림이다. 각종 기묘한 새 그림이 약 40점 정도가 그려져 있어 조선말기의 단청장 스님들의 솜씨를 엿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밑의 큰 벽화는 근래에 그린 풍경화로 솜씨에 차이가 있다. 사찰의 누각은 대개 2층 누각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나 자방루의 경우 창건 당시 300여명의 승군(僧軍)에게 군사교육을 실시

         하기 위해 단청 누각을 건립한 것이다. 이후 이누각은 승려들에게 불경을 가르키고 초파일 같은 큰 행사때 법회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자방루(滋芳樓)란 “꽃다운 향기가 점점 불어난다.”는 뜻으로서 “불도를 딲는 누각”이라는 말이

         다.

 

 

 

 

 

 

 

          자방루 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탐진당....

 

 

 

 

 

 

              옥천사 대웅전(玉泉寺 大雄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옛 대웅전은 정유재란(1597년) 당시 왜군들이 불태우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40 여 년 동안 잡초만 무성한 빈터로 남아

           있었다. 인조 17년(1639년) 학명대사가 이 근방을 지나다가 대둔리 촌락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게 되었는데 꿈에 신인

          (神人)이 나타나 절터를 현몽함으로 이튿날 이 곳에 올라와 절터를 발견하고 수년 동안 초옥을 짓고 참선 정진했다. 이

         후 10년 후인 인조 27년(1649년) 영옥(靈玉)대사가 대웅전을 중창 하였고 숙종3년(1677년) 묘욱(妙旭)대사가 개수하고

         영조12년(1736년) 시축대사가 개수하였으나 건물이 너무 낡았으므로 고종 원년(1864년) 용운(龍雲)대사(한용운이 절대

         아님!!)가 새롭게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3출목(出木), 팔작(八作)지붕의 다포계(多包系)의 양식건물로 <경남 유형문화재 제 132

         호>로 지정되어 있다. 포(包)란 지붕의 무게를 분산하기 위하여 목재를 여러 겹 포갠 전통 건축기법으로 밖으로 내민 뾰

         족한 쇠서가 3개이면 3出木이라한다. 건물의 규모는 일반 대웅전과 비슷하지만, 마주보고 있는 자방루나 적묵당의 크기

         에 비하면 초라하리만큼 작은 편이다. 앞마당의 뜰[中庭]도 자방루에 비해 훨씬 작고, 부속 건물에 둘러싸여 답답한 느

         낌을 준다. 다마 높이 쌓은 석축 위에 건물을 조성 함으로써, 이곳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든 위를 올려보게 하여 중심건물

         이 갖는 당당한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건물의 부재(部材)들 역시 고급스럽고 튼실하여 조선후기 남해안 지방에 건

         립된 일반 사찰에 비해 훨씬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기둥의 장식물들은 길게 뻗어있어면서도 완만하게 상승하

         고 있어서 힘과 유려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대웅전은 조선 후기 다포계 팔작 집의 화려한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므로, 당시의 대웅전 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우리 선조들은 목조 건물을

         지으면서 못 하나 쓰지 않고 서로 엇물리게 하는 기법으로 이런 아름다운 건물을 건립 했던 것이다. 대웅전 현판 글씨는

         영조 때 동국진체풍(東國眞體風)의 대가인 동화사 기성대사(箕城 1693~1774)의 글씨이다. 이 법당은 아미타불을 주불

         로 모셨으므로 “극락전” 이라 해야 옳을 것이나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실 때 “대웅전” 이라 쓴 편액을 그대로 보존

         하고 있다.

         

           

 

 

 

 

         탐진당(探眞堂)은 “진리를 탐구 하는 집” 이란 뜻이다. 대칭으로 마주보고 있는 적묵당과 함께 영조30년(1754년)에

         건립 되었다. 적묵당은 상판스님들 30여명이 공동 거처하고 탐진당에는 하판스님 30여명이 공동 거처했다. 현재는 왕생

         계 영가 1,000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일부는 종무소로 쓰이고 있다.

 

 

 

 

 

 

               적묵당(寂默堂)은 영조 30년 (1754년)에 건립된 건물로 옛날에는 옥천사의 상판(上阪)스님들이 경을 읽고 공양을 하며

            공동 기숙하는 큰방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지장보살님을 모셔놓았고 재를 올리거나 경을 읽는 강학당(講學堂)으로

            사용되고 있다. 적묵당 3칸에 잇대어 요사채를 달아내어 전체 건물의 모습은 ㅁ형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추녀 밑에는

            옛날 단청이 고색창연하게 남아 있으며 주두(柱頭) 위에 조그마한 단지 하나씩을 얹어 놓았는데 이는 화재방지를 위하

            여 바닷물을 떠다 올려놓은 비기(秘祈)로 보인다. 집이 낡아 2006년에는 정부에서 전면 해체보수공사를 하였다.

 

 

            이제는 대웅전 옆에 있는 명부전으로 가면서 천천히 둘러봐야 겠다. 그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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