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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안국사(安國寺).

by 五江山 2011. 11. 8.

 

 

 

        안렴대에서 적상산 운해를 촬영하고 내려오면서 안국사 앞으로 지나가는데 그냥 갈 수가 있나. 해서 안국사를 둘러 보기로

        했다. 다만, 사진을 올리는 순서는 구경한 순서대로 올리는것은 아니고 그냥 안국사로 가는 첫걸음, 일주문부터 올린다.

 

               안국사 일주문 현판에 적상산안국사(赤裳山安國寺)라고 쓰여 있다.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 화상이 창건 했다고 한다. 광해군 6년(16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

   사고를 설치 하려고 이 절을 늘려 지었고, 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

   그 뒤 영조 47년(1771년)에 법당을 다시 지었고,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 하여 절 이름을 안국사(安國寺)라 부르기 시작

   하였다. 1910년에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활을 하였다.

   1989년에 적상산 양수발전소 위쪽 댐 건설로 절이 수몰 지역에 포함되자 원행 스님은 호국사지였던 현재 자리로 안국사를 옮겨

   세웠다.

   청하루를 지나 앞마당에 들어서면 적상산을 배경으로 단아한 모습의 극락전이, 왼쪽에는 천불전과 성보박물관이, 오른쪽에는

   지장전과 범종각 등이 자리 잡고 있고, 아래로는 선방과 호국당, 그리고 호국사 비가 있다. 특히, 천불전은 ‘선원록’을 봉안했던

   적상산 사고 건축물로 현존하는 유일한 사고 모습이다. 극락전은 ‘인욕바라밀’ 학이 단청을 하였다는 유명한 학단청 설화를 알

   수 있듯 오른쪽 창방 쪽에는 단 하루분량의 단청할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성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불상과 탱화,

   불교 유물과 도자기 등 500여 점 이상을 전시하고 있다.

 

 

 

 

 

              안국사 전경 (일부) 갤로퍼 저차가 옥에티네....

  일주문을 지나서 안국사로 들어오면 두갈래 길이 있는데 윗길로 가면 요사채를 먼저 만나고 아랫길로 오다보면 또 두갈래 길이

  있다. 두갈래 길중 아랫길로 가면 주차장이 있고 안렴대로 가는길이다.

 

 

 

 

 

          주차장에서 첫번째로 맞이하는 건물이 수각(水閣 : 우물) 이다.

 

 

 

 

 

                                    우물 옆을 돌아서 윗길로 가면 첫번째로 보이는 건물이 청하루(淸霞樓)이다. 

 

 

 

 

 

          청하루 오른쪽 모퉁이에 서서 보면 범종각이 보이고 그뒤로 지장전이 있고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보인다.

 

 

 

 

 

 

  

           청하루 밑으로 걸어가다보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극락전이다.

 

 

 

 

 

 

          안국사 극락전(極樂殿) 이다.극락전은 ‘인욕바라밀’ 학이 단청을 하였다는 유명한 학단청 설화를 알 수 있듯 오른쪽 창방

          쪽에는 단 하루분량의 단청할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한다만은 시간관계상 볼 수가 없었다.

 

 

 

 

 

 

극락전 안에는 안국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安國寺 木造阿彌陀三尊佛像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1호)이 계시는데 이 불상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관세음보살, 우측에는 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불상은 그다지 크지 않음에도 작품의 조형성

이 매우 뛰어나다. 삼존상은 모두 얼굴이 각이 지고 넓적하며, 턱은 좁고 목은 짧으며, 어깨는 움츠리고 허리는 약간 구부리고 있

으며, 입술 양 끝을 치켜 올려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 주름과 손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비록 삼존상은 조성기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어나, 삼존상의 형태로 볼 때, 17세기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을 지니

고 있다. 특히 좀더 평면화된 얼굴과 가슴, 경직성이 보다 진행된 점 등은 17세기 후반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극락전 뒤편 오른쪽에는 지장전(地藏殿)이 위치하고 있다.  여기 안국사 안내도에는 명부전(冥府殿)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지장전(地藏殿)은 지장보살(地藏菩薩)님을 본존으로 모시고, 좌우에는 염라대왕등 10대왕(大王) 명부의 권속들을 모신 전각인데,

 명부전(冥府殿), 혹은 시왕전(十王殿)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운데 계시는 분이 지장보살님이시고 좌우로 10대왕(大王)들의 모습이

 보인다. 10대왕 앞에는 동자들이 서있다.

 

 

 

 

 

         범종각(梵鐘閣)이다. 범종각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요사채 인데 보살님들이 있어서 촬영을 못했다.

 

 

 

 

 

 

안국사범종(安國寺 梵鐘 :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88호)은 1788년(조선 정조 12년)에 조성된 것으로써, 범종각에 안치되어 있다.

종신의 형태는 입구가 약간 벌어진 형태이며, 천판(天板) 위의 용뉴(龍紐)가 결실되기는 하였지만, 조선시대 범종의 전통을 계승하

면서 외래 양식을 가미한 조선후기 범종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앙부 종신(鐘身)에 주성기(鑄成記)가 방형곽을 이루면서 양각되어 있어, 범종의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 또한 주성기에

보이는 주조장(鑄造匠)인 이만중(李萬重)과 권동삼(權東三)은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인물로서, 이는 주조장의

계보를 확실히 보여 주고 있어,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범종 왼쪽에는 대화합의 범종 주조비 가 세워져 있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적상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三년 月印 대화상께서 정토도량으로 개산 하였다. 최영장군이 거란과 왜적을 방비하기 위하여

적상산성을 축조 하였으며 조선초 무학대사님이 이 삼재불입지처국중 제일 길지라 하여 주석 하였고 광해조때 조선조 실록을

보존하는 적상산 사고를 설치한 이래 안국사가 번창해야 무주와 나라가 융성한다고 하여 무주 도호부 백성들과 승병장상운등

승병과 관군들이 사찰과 더불어 산성과 사고와 역사를 지켜낸 호국안민의 대승지이다.

근래 무주 양수 발전소 상부댐 건설로 七년여동안 이건 복원중창불사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렀으나 구류중생을 제도 할 범종이

병란으로 훼절되어 복원코자 하던중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한 무주 리조트 쌍방울개발의 이봉녕이의 철거사 등이 발원

하고 라제산업 변윤섭거사 지성건설 김영구거사 그리고 이 고장 김세웅군수등 사부대중과 김용무경찰서장이 수희동참하여

대원을 성취하게 되었다.

대화합의 범종 주조 동참공덕으로 국내외의 한민족이 대동단결하여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하고 국운이 더욱더 융창되기를

간구하며 불일이 증휘하고 법륜이 상전하여 삼계중생이 번뇌를 초탈이고 득락하기를 두손모아 서원 하는 바이다.

불기 이천오백사십일년

단기 사천 삼백삼십년

정축년 유월 십팔일

 

몽회가 글을 짓고

여산 권갑석이 종과 비문을 쓰다.     

 

 

 

 

 

 

청와루 오른쪽은 구경 했고 이제 왼쪽으로 둘러 보는데 청와루 왼편 뒷부분에는 삼성각이 있다. 안내도에는 삼성각 뒤에는

조사당이 있다고 표기가 되어 있다만, 지도에는 안나와 있다.  시간관계상 안가봤어니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삼성각(三聖閣)은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전각이다.

 

 

 

 

 

 

              삼성각의 중앙에는 칠성광 부처님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왼편에는 천태산(天泰山)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독성(獨聖)*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리는 나반존자도(那畔尊子圖)라는 독성탱화

(獨聖幀畵)가 모셔져 있다. 뒤에 보이는 산이 천태산 이고 그 앞에 소나무가 있고 바위위에는 왼손에 염주를 들고 비구스님이

정좌해 있다.

 

 

 

 

 

 

            오른쪽에는 우리나라의 토속신인 산신령님이 호랑이와 함께 모셔져 있다.

 

 

 

 

 

 

             삼성각 앞에는 천불전이 있다. 천불전은 ‘선원록’을 봉안했던 적상산 사고 건축물로 현존하는 유일한 사고 모습이다.

 

 

 

 

 

 

                    안을 살짝 엿보니 천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천불전 앞에는 성보박물관이 있는데, 성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불상과 탱화, 불교 유물과 도자기 등 500여 점 이상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안에는 보살님들께서 청소를 하고 있었고 촬영금지 라고 되어 있어서 이사진 뿐이다.

 

 

 

 

 

 

              박물관 밑으로 내려오니 길위의 기왓장에 이런글이 적혀있다.

 

 

 

 

 

 

            그래서 더이상 들어가지 않고 멀리서 잠깐 바라만 보았다.

 

 

 

 

 

 

           안국사 주차장에 있는 호국사 안내표지도에는 호국당으로 나와있다. 저 뒤에 보이는 건물은 해우소이다.

 

 

 

 

 

 

              호국사 현판.....

 

 

 

 

 

             해우소로 가는 길목에 단풍이 이쁘게 물들어 있어서 참으로 보기가 좋았는데.....

 

 

 

 

 

 

               이런 비양심적인 인간들이 눈쌀을 찌뿌리게 한다.....

 

 

 

 

 

 

           안국사 주차장 밑의 숲속에는 적상산성 호국사비(赤裳山城 護國寺碑)가 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문은 바람에 많이 지워졌다. 다만 비 중앙에는 順治 二年十月日走라고 희미하게 남아있다.

 

적상산성 호국사비(赤裳山城 護國寺碑)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전 되어 있다.

호국사비는 적상산에 지은 호국사의 창건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호국사는 조선 인조때 전라감사로 있던 윤명은(尹鳴殷)이

창건비용을 부담하여 지은 절이나, 1949년 여순사건 때 불 타버리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적상산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

쌓인 천혜의 요새로, 고려말에 최영장군이 군사를 훈련시키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산에 성을 쌓아 국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광해군 2년(1610년)에 부분적으로 성을 쌓았다.

그후 성안에 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그러나 인조 때 사고를 지키던 군사들이 흩어져

사고 보존이 어렵게 되자,다시 승군(僧軍)을 모집하기 위해 이 호국사를 짓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까마귀가 울어대는지 모르겠네....

           이제 내려 가면서 적상산의 단풍이나 찍어면서 집으로 가야겠다.

           아쉬운 점이 많이 있지만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는 없다.

           여운을 남기면서 발걸음은 집으로 향한다.....

 

 

 

                   파란에서 조조님이 달아주신 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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