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사의 향기.

옥천사(玉泉寺).2

by 五江山 2011. 10. 17.

 

 

 

          지금 옥천사 입구 요사채앞에서 환쟁이님과 우경님이 기다린다. 빨리 둘러보고 가야겠다. 전화가 오기전에....

          대웅전에서 명부전으로 가는 중간에 사찰 특유의 굴뚝이 보인다. 돌과 황토로 층을 쌓아서 만든 굴뚝이다.

 

 

 

 

 

          굴뚝옆에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 이다. 고색창연한 단청이 사찰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것같다.

 

 

 

 

 

 

          명부전(冥府殿)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본존으로 하여 염라대왕 등 10대왕(大王) 명부의 권속들을 모신 전각으로,

          지장전(地藏殿), 혹은 시왕전(十王殿)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장보살은 석가 입멸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부처없는

          세계에 머물면서 육도(六道) 중생을 교화 한다는 보살이다. 중앙의 부처님은 지장보살이시고, 좌우보처는 합장을 한

          도명존자와 읍을 한 무득귀왕이 시립하고 계신다.

 

          조선 고유의 관복을 입은 시왕님을 양쪽으로 각 5구씩 모셨다. 시왕 후면에는 영조20년(1744년)에 조성된 시왕탱이

          각 1장씩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시왕 앞에는 시녀가 각 1구씩 있었으나 시녀와 시왕탱은 도난방지를 위하여 다른 곳

          에 옮겨 보관하고 있으며, 시왕탱은 원본을 복사한 사진을 봉안하고 있다.

 

         옥천사는 처음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문무왕16년(676년)에 건립 되었으며, 이후 원 사찰건물은 불타 없어지고 지

         금 전하는 명부전은 고종32년(1895년) 옛 궁선당(窮禪堂) 터에 중건한 것이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심포계의 다포건물(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쇠서를 이용하여 네 모서리마다 각 7마리의 봉황새를 앉혔으며, 내부에

         는 활처름 굽은 중보(中褓) 2량을 가구하여 조선건축의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하고 있다.

 

 

 

 

 

 

         명부전을 지나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칠성각과 취향전이 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이 칠성각이고 뒤에 보이는 건물이 취향전이다. 시간관계상 취향전은 못가봤다.

 

 

 

 

 

 

 

                   칠성각(七聖閣)은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칠성신을 모신 전각이다.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는 자식이 없거나 아들을 얻

            고자 할 때, 혹은 수명장수 하고자 할 때, 칠성님께 헌공 하거나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한다. 조선 후기에 도교의 영향

            으로 칠성신앙이 크게 유행 할 때 불교에서 이를 수용하여 칠성각이 세워졌다. 원래 북두칠성은 도교에서 태을성신

            (太乙星神)이라 받들면서 사람의 수명과 부귀, 복록,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별이라 한다. 옛날 큰 스님들은 자정(밤12

            시)에 일어나 자정수(子正水 : 달빛의 음기가 서린 샘물)를 마시고 북두에 절한 후 하루에 10만 독씩 염불하는 스님들

            이 많았다. 이런 스님들은 대개 90세를 넘게 살았다 한다. 이 건물은 1899년에 건립 되었으며 내부는 1981년에 조성

            된 칠성탱화가 있을 뿐 단조롭다.

 

 

 

 

 

 

              칠성전 내부... 부처님은 안보이고 칠성탱화만 한장 보인다. “참배후 촛불을 꺼주십시요.” 라고 되어있다.

         탱화를 쳐다보고 있어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우리 아버지도 탱화를 그리셨는데....

 

 

 

 

 

 

         칠성각 오른쪽 위에는 조사전이 있다.

         조사전(祖師殿)은 이 절에 주석하셨던 조사 스님들을 모신 전각이다.

         중앙에는 이 절을 창건한 화엄종주 의상대사(義湘 ; 625~702년)의 진영을 모셨다.

         바라보아 왼쪽은 서응대사(蔡瑞應 ; 채서응)의 진영이다. 서응대사는 구한말 옥천사에서 동진출가한 후 대원사, 벽송사,

         영원사, 천은사 등에서 불경을 배워 당시 우리나라 5대 강사 중의 한분이 되셨다. 대사는 일제시 사법(寺法)에 의하여 옥

         천사 초대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광복직후 입적 시에는 아프지 않고 좌탈입망(坐脫入亡)하셨다.

         오른쪽은 근대의 고승인 청담(靑潭 ; 1902~1971년) 대종사의 진영이다.

 

 

 

 

 

 

              칠성각 오른쪽 앞부분에는 독성각이 있다.

         독성각(獨聖閣)

         부처님의 제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성품을 깨달으므로 성문(?聞)이라고 한다. 그에 비하여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에서 홀로 수행하여 깨달은 수행인을 독성(獨星)이라고 한다. 독성은 홀로 공부 하여도 12인연의 이치를 깨달아 알

         기 때문에 연각(緣覺)이라고도 부른다.

         독성각은 1.08평으로 겨우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으며 고종34년(1897년)에 건립되었다. 산령각과 함께 건물이 매우

         작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전각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독성각 바로 오른쪽에는 산령각이 있다.

         산령각(山靈閣)에는 산신을 모셨고 독성각(獨聖閣)에는 나반존자를 모셨다. 두 건물은 고종34년(1897년)에 건립되었으

         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전각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산령각은 높이 124cm, 폭 102cm, 0,46평으로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예배하도록 되어 있다. 독성각은 그 보다 약간 큰 1.08평으로 겨우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다.

         두 건물은 작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있다. 두리기둥에 주심포 형식의 간결한 공포의 구성, 그리고 창방과 주두의

        결합에서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옥천사의 전체적인 조화를 고려하여 대웅전 뒤쪽에 이와같은 작은 건물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산령각옆 대웅전 바로 뒷쪽에는 나한전이 있다.

         나한전(羅漢殿)은 16나한님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님(羅漢)님은 미를불이 출현할 때까지불법을 수호 하도록 부처님의

         부촉을 받은 분들로서 곧잘 영험을 나투는 수가 있는데 옥천사에서도 가끔 영험을 보이신다.

         중앙의 유리장 안에는 석조로 된 석가모니불과 목조로 된 미륵보살, 제화가라보살의 삼존을 모셨는데 정조연간(1776~

         1799년) 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름다운 불상들이다.

         나한상은 상단 불상의 좌우로 각 여덟 분씩 16분을 모셨다. 16나한은 최근에 일률적으로 개분, 개채하였는데 그 중 9분

         은 조선 전래의 나한님들 이시고 7분은 근래에 조성된 나한님들 이시다.

         나한전 건물은 고종32년(1895년)에 건립한 단포(單包)집으로 내부에는 4모서리에 비룡(飛龍)을 조각하여 매다는 등 조

         선 후기 건축의 멋을 보여주고 있다. 바깥 기둥의 주련은 성파 하동주(星坡 河東州 1896~1944년)선생의 글씨다.

 

 

 

 

 

 

              대웅전 뒤편 오른쪽에는 팔상전이 있다.

         팔상전(八相殿)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8폭의 탱화로 그려 모신 전각이다.팔상전 건물은 고종27년(1890년)에 건립

         되었다. 8상 탱화의 원본은 도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따로 보관중에 있으며 대신 이 곳에는 원본 탱화의 사진을 봉안하였

         다. 탱화 밑의 조상들은 부처님의 8대 제자들로서 최근에 풀리싱으로 조성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2500여 년 전 카필라성 동서남북의 4문을 돌아 보시고 (四門遊觀相) 생로병사가 있음을 아신 후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가했다고 하지만, 근래의 고승 청담대종사는,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 중에서도 특히 중생들의 죽

         는 고통을 불쌍히 여겨 죽지 않는 도리를 구명(究明)하기 위하여 출가 하셨다.”고 설법하셨다.

         마음을 깨치면 생사가 따로 없다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르치셨다.

 

 

 

 

 

 

              팔상전 오른쪽에는 금당이 있다.

         금당(金堂)이란 본래 부처님을 모신 법당을 말한다. 그러나 옥천사 금당은 예부터 대웅전을 관리하는 상노전(上爐殿 대

         웅전)스님이 거처하는 집이다. 부처님을 시봉하는 노전스님은 정갈해야함으로 이와 같은 노전을 별도로 제공하였던 것

         이다. 이 금당의 대들보 밑에서 영조 40년부터 의성군 340명을 양성하였다는 상량문이 발견된바 있다.

 

 

 

 

 

 

 

                 금당을 보고 요사채 뒤를 돌아서 나오는데 요사채 입구의 현판에 글이 새겨져 있는데 ○ ○ 문 이라고 적혀 있는데 잘

           모르겠다. 이 요사채는 오랜 옛날부터 옥천사의 살림집이다. 여러 개의 방이 있어 중진스님이나 객스님이 거처한다.

           요사채의 전체 모습은 ㅁ형으로 생겼고 가운데는 작은 마당이 있어 마치 서울 경기지방의 양반집 안채처름 생겼다.

           이 요사채에는 공양을 짓고 반찬을 마련하는 부엌이 딸려 있는데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셨다. 너무 낡은 탓에 2006년

           정부의 전면 해체보수공사가 있었다.

 

 

 

 

 

              요사채를 나와 옥천사 앞마당에서 유물전시관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이 건물은 템플스테이 수행관 무우당(無憂堂)이다.

         무우당... 내 객관적으로 해석을 하면 근심 걱정이 없는 집. 그래서 마음이 편안한집... 이라고 해도 될른지 모르겠다....

         불심이 깊지가 못해서 자세한 뜻은 모르겠고.... 올해 완공되어 7월 1일 수행관 낙성식을 하였다.

         그런데 기념품 파는곳 이라고 적혀 있다. 아마  옥천사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기념품도 파는 모양이다.

 

 

 

 

 

 

              보장각(寶藏閣 ; 유물전시관)  

         보장각(寶藏閣)은 성보 문화재를 전시하기 위하여 1999년 정부의 지원과 단월들의 시주로 건립된 건물이다. 전시 유물

         로는 보물 제495호 “임자명 반자(壬子銘飯子)를 비롯하여 대종(숙종27년 ; 1701년),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 ;

         순조16년 ; 1816년), 지장보살탱화(영조20년 ; 1744년), 명부시왕탱화 10폭(1744년), 신중탱화(정조6년 ; 1781년), 소조

         시녀상(塑造侍女像 ; 1670년), 각종 고문서 등 약 120점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가 전시되고 있다. 입장료는 없으며 월요

         일에는 개관하지 않는다.

 

         약 10년정도 되었을까.... 그때 정유랑 정유엄마랑 여기와서 전시관을 둘러 보았다. 지금은 시간관계상....

 

 

 

 

 

 

 

              옥천사 오른쪽에 있는 두번째 요사채(寮舍寨)다. 이 요사채는 큰 스님들이 방문 하였을때 조용히 모시는 객실이다.

         옛날 극락전이 있을 때 큰스님들이 기거하던 집이 있던 자리에 최근 중건 하였다.

 

 

 

 

 

 

 

              요사채 오른쪽에 위치한 삼천불전(三千佛殿)이다.

         그런데 옥천사 전각안내에는 이위치가 축성전(祝聖殿)으로 되어 있다.

         축성전(祝聖殿)은 임금의 수복과 강녕을 비는 전각이다. 고종27년(1890년)에 상국(相國) 박규희(朴珪熙)가 경상도관찰

         사 겸 진주목사로 내려와 있을때 조정으로부터 “명산고찰에서는 왕실을 위해 기도를 올려라”는 교지가 있음에 따라 박

         목사는 사재를 털어 축성전(祝聖殿)을 짓고 임금의 수복안녕을 기원 하였다. 옥천사 에서는 이러한 전통을 되살려 2000

         년 옛 극락전 자리에 축성전을 짓고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옥천사의 안내판에는.....

            약사전 (약사 여래불 모신곳)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를 소멸시켜 의복 음식 등을 만족케하는 부처님 . 

         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간관계상 직접가서 확인을 못해봤으므로 이 정도로 하고.... 終....

 

         그래도 환쟁이님 덕택에 옥천사도 구경 했어니 감사하요. 이자리를 빌어서 환쟁이님 한테 감사를 드립니다...